서양 미술사

피카소 1881~1973

천줄기바람 2013. 3. 20. 13:34

에스파냐의 화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며 1900년 제1회 개인전을 가졌다.

파리로 이주한 뒤 파리 하급계층의 비참한 생활상을 바탕으로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를 청색시대라고 한다.

1904년 몽마르트에 정주하면서 부터는 그림의 색조가 청색에서 장밋빛시대로 바뀌면서 색상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흑인 조각으로부터 착상을 얻고 1907년 입체파의 선구작품인"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하였다.

1909년부터 입체파 시대로 들어가게 되고 1920년대에는 신고전주의인 작품을 그리기도 한다.

또한 무대 장치를 담당하는 등 활동영역도 넓히게 된다.

1924년경부터는 사실주의와 입체파가 혼합된 작품을 만들고 1925년에는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다.

1937년 에스파냐의 내전을 다룬 작품"게르니카"를 발표하였다.

19세기부터 2-세기에 걸쳐서 미술의 표현 양식의 혁명시대에 최대의 역활을 하였으며 1907년 입체파 운동을 시작한 이래 전세계 예술계에 미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 피카소 미술관: 파리와 바르셀로나 두곳에 있다.

- 좌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mada0219&logNo=50018489315&viewDate=¤tPage=1&listtype=0

http://blog.daum.net/hjkimr1/7905621

 

 

<피카소 작품 시기 구분>

1. 청색 시대   1901~1904  사회적 비관주의

2. 장밋빛 시대    1905~1906   서정적,감상적19030~의   1907~1915  현실의 재창조, 비현실적 요소들로 작품을 구성

4. 고전시대: 1917~1924    이탈리아 여행과 고전예술 영감

5. 야만시대   1925~1929  부정적 이미지 ,공격성 표출

6. 부아젤루 시대  1930~1935  기호화,상형문자화    부아젤루: 성 이름

7. 전쟁시대    1935~1945   전쟁의 참상 고발

8. 발로리스(프랑스 남부 지명)시대   1947~1954    도자기 제조

9. 고전작품 모방   1955~1962   옛 거장들의 작품 모방: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해석

 

 

 

 

1. 죽은 카사헤마스   1901  목판에 유채    27*35   피카소 미술관  파리    청색시대 작품

 

피카소의 친구: 실연으로 자살

http://archum20.egloos.com/3171964

 

2. 인생   1903  캔버스에 유채   194*127   클리블랜드 미술관   미국    청색시대 작품

 

 

죽은 카사마헤스: 처음에는 본인의 얼굴을 그렸다고 함

http://blog.daum.net/tonio66/3700714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wrose30&logNo=90033080567

 

 

3. 두 형제  1905   캔버스에 유채  쿤스트 뮤지엄  바젤  스위스   장미빛 시대

 

 

주제: 우애 깊은 형제, 장밋빛 시대로 색상이 밝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ksuk75&logNo=96585409&categoryNo=96&viewDate=¤tPage=1&listtype=0

 

 

4.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   캔버스에 유채   243.9*233.7  모던 아트 뮤지엄  뉴욕   입체주의 시대

 

위 그림은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그림이다 (아비뇽의 여인들 이라고도 불린다)

〈아비뇽의 처녀들〉이 발표된 1907년 이전까지, 입체주의라는 용어는 화단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듬해인 1908년 미술평론가 루이 보셀이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그림을 묘사할 때 처음 사용한 용어로, 그려진 대상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마치 입방체처럼 보인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현대 미술의 본격적인 전개는 20세기 초로 보는데, 현대 미술 운동 가운데 가장 과격한 혁명으로 꼽히는 입체주의는 전통적인 회화 제작 기술에 역행했다. 전통 회화가 2차원 캔버스 위로 3차원 대상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끼워 맞춘 역사였다면, 입체주의는 정반대로 3차원 대상을 2차원 캔버스에 걸맞게 면들로 해체한 후 늘어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줬다. 이것은 회화의 권위와 가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되었고, 파블로 피카소 역시 ‘충격을 줄 목적’으로 이런 시도를 감행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곧잘 미술사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림에는 다섯 여성의 누드가 등장하는데, 바르셀로나 아비뇽 인근 사창가 여성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구성이 심상치 않다. 여성들의 인체, 천, 커튼, 그리고 배경이 원근법에 구애되지 않고 하나의 면 위에서 뒤섞여 처리되었다. 그림 하단에 놓인 과일 담긴 탁자는 위에서 내려다본 시선을 담고 있어 여성을 보는 각도와 충돌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묘사된 대상이 전부 입방체로 변환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19세기 말 유럽 예술계를 강타한 원시 아프리카 미술의 모티프도 뒤섞여 나타난다. 그림 우측의 여인 둘은 서부 아프리카의 원시 가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전한다. 그림의 이러한 과도기적 성격 때문에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이 그림이 ‘미완성’ 상태라고까지 평가한다. 한편 피카소의 그림들에서 성병에 대한 화가 자신의 두려움을 읽어낸 바 있는 존 버거처럼, 미술사가 윌리엄 루빈도 <아비뇽의 처녀들> 속에서 변형되어 그려진 얼굴이 매독 증상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현재 이 그림은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의 소장품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힌다.

 

아비뇽: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창녀촌 거리 이름

작가의 제목: 철학적 매춘숙

동적인 여인: 원래 남자로 그렸으나 나중에 여자로 수정

선과 형태로 이루어진 그림

과일: 세상의 쾌락, 허무를 의미

http://ask.nate.com/qna/view.html?n=426474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oji2&logNo=140089537286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smj1254&folder=15&list_id=9501581

 

5. 안락의자의 올가의 초상    1917   캔버스에 유채  피카소 미술관   파리     고전시대

 

http://drlee.org/etcetra/painting/picasso/rs3016.htm

 

 

 

6. 해변에서 달리는 두 여인   1922   패널에 과슈   32.5*41.1   피카소 미술관  파리     고전시대

 

 

파란 기차 라는 무대의 커튼에 그려진 그림, 건장하게 표현

http://www.thinkpool.com/MiniBbs/ViewPost.do?action=read&hid=katalina&cid=mini&ctg=2&viewType=1&sn=984016

 

 

7. 거울보는 여인 1932   캔버스에 유채  모던아트 뮤지엄  뉴욕   부아젤루 시대

 

 

마리 테레즈: 옆모습과 앞 모습,거울에 비춰진 모습,

마리 테레즈의 18살때 피카소와 동거

http://art2me.org/images/Picasso.htm

 

 

 

8. 꿈   1932   캔버스에 유채    137*97   개인 소장             부아젤루 시대

 

위의 그림은 '꿈'이라는 그림이다.

〈꿈〉은 피카소가 입체주의 시기를 벗어나 고전주의 시기에 들어서서 제작한 것이다. 다소 이국적인 벽지 무늬와 온통 원색으로 범벅이 된 여인의 인체는 프랑스 야수주의 회화를 연상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 그림은 여인 좌상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고수하면서도 여인의 얼굴, 팔, 가슴을 평면으로 분할하고 재구성하여 입체주의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제작할 당시 기혼자 신분이던 피카소는 이 어린 소녀를 향한 성적 욕망으로 충만한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얼굴이 기울어진 여인의 기다란 콧대를 경계로 왼편 뺨과 눈 부위의 연보랏빛 채색면에서 발기한 남성기의 형체를 찾아내기도 한다(자세히 보면 정말 닮기는 했다). 그림이 완성되고 2년이 지난 1935년 테레즈는 피카소의 아이를 임신한다.

이 작품은 피카소 사후에도 몇 차례 구설에 오르며 유명세를 이어갔다. 그 첫째는 199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다. 당시 4840만 달러(한화 약 500억 원)에 낙찰되어 당시로서는 6위로 비싸게 거래된 작품으로 기록된 것이다. 둘째 논란은 2006년 이 그림의 소유주인 카지노 재벌 스티브 윈이 그만 ‘실수로’(?) 자신의 발꿈치로 그림을 세게 치는 바람에 그림 속 테레즈의 왼쪽 팔뚝 부위가 무려 6인치 가량이 찢기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미국의 시사지 『뉴요커』는 이 사건을 두고 「4000만 달러의 발꿈치」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작품에 구멍을 낸 당사자인 스티브 윈이 운영하는 ‘윈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제공하는 쇼의 제목은 피카소의 작품명을 그대로 딴 〈꿈〉이다.

 

마리 테레즈를 그린, 성적욕망의표시로 남자의 성기 표현

http://drlee.org/etcetra/painting/picasso/rs3021.htm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d_cat7&logNo=10039511471&viewDate=¤tPage=1&listtype=0

http://redtop.tistory.com/45

http://www.artwise.co.kr/board/board.html?code=aws31kim_mynote&page=1&type=v&num1=999961&num2=00000&lock=N

http://blog.naver.com/PostThumbnailView.nhn?blogId=wnswns987&logNo=100112575834&categoryNo=5&parentCategoryNo=

 

 

 

9. 게르니카   1937   캔버스에 유채   351*782   국립 레이나 소피아박물관  마드리드

 

위의 그림은 <게르니카>라는 그림이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 벌어지던 1937년 4월 26일,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다.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좌파 인민전선을 소비에트 연방이, 우파 프랑코파를 나치와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양상으로 전개된 것으로, 1939년 프랑코파의 승리로 종전될 때까지 스페인 전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때 바스크 족의 수도인 게르니카가 나치에 폭격당하면서 15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피카소가 분노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전투로 인해 군인들이 아니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점. 그는 폭격이 보도된 후 바로 <게르니카> 작업에 들어가 5월 1일 이를 위한 첫 스케치를 내놓는다. <아비뇽의 처녀들>과 함께 피카소의 2대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게르니카> 작업에 들어가기 직전, 사실 피카소는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 스페인관에 들어갈 작품을 의뢰받은 상태였다. 피카소는 이를 위해 파리 그랑 오귀스탱 가에 작업실을 얻어 세로 349.3cm, 가로 776.6cm의 대작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게르니카>에서는 나치의 폭격이나 내전의 구체적인 참상과 그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정형적이지 않은 인물과 대상의 표현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작품을 이루는 각 요소들의 조형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의 흑백 톤의 컬러만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극대화되었다. 캔버스 왼쪽부터 보면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쳐다보는 여인,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게르니카: 스페인 지명,  흑백으로 그린 전쟁의 참상을 표현

ami86.com.ne.kr/31Picasso.htm

 

 

10. 우는 여인   1937   캔버스에 유채  60*49  모던 갤러리 소장   런던

 

 

전쟁의 참상 또는 슬픔을 표현, 전쟁의 참혹상을 고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anclub200&logNo=120095013987

 

 

 

11. 인형을 가지고 있는 마야    1938   캔버스에 유채   73.5*60   피카소 미술관 파리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abeschool&logNo=70146617548

마리 테레즈의 딸

 

 

12. 궁녀들(벨라스케스 모작)   1957   캔버스에 유채   134*260  피카소 미술관 바로셀로산(스페인)

 

 

 

 

 

 

http://drlee.org/etcetra/painting/picasso/rs3037.htm

 

 

 

 

 

13. 한국전쟁    1951   패널에 유채   110*210   피카소 미술관  파리

 

 

양민 학살을 의미(임신부등), 이 그림으로 공산당에서 제명 됨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LVq1&articleno=8934874&_bloghome_menu=recenttext#ajax_history_home

 

참고: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lywithanne&logNo=110098104656

http://paulkim.egloos.com/1142228

og.naver.com/PostView.nhn?blogId=lulra&logNo=40009999351&redirect=Dlog&widgetTypeCall=true:팜므파탈

 

명화가 30인 :  http://drlee.org/etcetra/painting/painters.html

 

입체파란?

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

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가 그린 (에스타크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퀴브)의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1907~9), 분석적 입체주의 (1910~12). 종합적 입체주의 (1913~14)등

3단계로 나누어 고찰될 수 있다.  '자연을 원추, 원통, 구(球)에 따라 취급한다'는

세잔느의 말은 입체파의 계시가 되었고,  그의 예술과 흑인 조각은 이 운동의

초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체로운 색체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채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構築的)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 시도는 중기에 이르러 대상이 극도로 분할되어 나타난다.  그 후 트롱프뢰이유*나

파피에 콜레의 수법을 채용하게 되고,  이것을 과도기로,  입체하 운동은 후기에

들어간다.  여기에서는 풍부한 색채가 부활되어 기하학적인 색면과 대상의 환기력

(煥起力) 있는 요소와 결합 융합된다.

 

몽마르트르의 세탁선에 거주했던 피카소, 브라크,  J.  그리스 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

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또 퓌트에 그룹으로 화면의 구성 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에의 길을 열었던 F.  쿠프카와  J. 비용, M.  뒤샹,  R. 뒤샹-비용의 삼형제

등이 있다.

1911년  그들은 엥데팡당전에 작품을 출품했고, 이듬해 섹숑도르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아폴리네르,   앙드레 살몽, 모리스 레이날 등이 비평가로서 이운동을

지원했다.  입체파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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