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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받은 메일

천줄기바람 2010. 3. 13. 22:33

 <법정스님이 열반하신 길상사와 관련된 애절한 詩>

 

 

진수무향(眞水無香)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물 가운데서도 참으로 깨끗하고 맑은 물은 일체 잡스러운 내음을 풍기지 않는 법' 이라는 뜻이지요. 그 글귀에서 한자씩 따서 진향(眞香)이라 예명을 지은 기생(妓生)이 있었으니, 본명은 김영한(英韓)입니다. 그녀는 우리와 동시대를 얼마 전까지 살았고, 죽기 전 1,000억대가 넘을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위치했던 그녀 소유의 요정 ‘대원각’(7,000평, 1996)을 ‘길상사’ 절터로 기증하여 세인들에게 회자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한겨울 눈이 하얗게 쌓인 길상사 마당에 뿌려져 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또 妓生 眞香이는, 한국 현대시사(詩史)의 전설적 詩人이 된 ‘백석’을 지독히 사랑했던 기녀로 그 사랑 이야기는 문단뿐 아니라 세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짧은 사랑후 이별하게 된 백석(白石)과는 해방후에 같은 하늘 아래서 살면서도, 북에 있는 그를 사무치게 그리워만 할뿐,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에 파묻혀, 영영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알기 쉽게 한편의 시로 축약(縮約)하여 표현해 낸 시인이 있으니,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詩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생진’ 시인의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란 詩입니다.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마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어느 누가 위의 시를 읽고는:

이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어디에 있을까?

이보다 가슴아픈 사랑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한 순간도 사랑하는 이를 잊지 않은 사랑,

사랑하는 이의 시를 1000억보다 더하다고 말하는 사랑!

그들이 후회없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욱 간절해진 것일 수도....

 

길상사에 시주한 여인의 남자가 시인 백석이었군.

그랬군, 그러니까 백석은 아름다운 시를 쓴 사람일 뿐만 아니라

대단한 로맨티스트였다는 얘기군.)

 함흥 기생 眞香은 24살 때, 25세인 시인 靑年敎師 백석(白石)을, 어느 연회 자리에서 만납니다.번개가 섬광(閃光)을 치듯, 찰나적인 그 만남은, 서로 식을줄 모르는 사랑의 불만 붙은채, 그리움을 남기고, 평생 재회를 애타게 기다리며 세월만 흐르게 되는 비극적인 사랑인 運命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첫 만남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때 까지 이별은 없을것’이라던 백석의 약속은, 바로 즉시 집안의 완강한 반대로 오래가지 못합니다.당시 장래가 촉망되던 엘리트 시인 ‘백석’의 집안에서는 당연히 그와 기생과의 만남을 극력 반대하여 그의 부모는 서둘러 다른 규수와 강제 결혼을 시킵니다.백석은 고민 끝에 결혼식날 첫날 밤. 신혼방을 빠져 나와 한양에 있는 영한에게 달려와 함께 만주로 달아 나자고 설득합니다.그러나 진심으로 백석을 사랑하는 영한은, ‘백석’의 장래를 위하여는 자신이 사라져 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한다”는 신파조 이야기처럼, 따라나서지 못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아! 애석하다!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숨 넘길 때까지 백석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만 쌓아 갔을뿐, 이승에서는 영영 만나지 못합니다.

영한과 이별후, 그때 심정을 후일에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현대시史에도 길이 남을 名詩로 표현하였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길상사 창건시 개원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오셔서 축사를 해주시고 이에 답례로 법정스님은 명동 성당에 나가셔서 법문을 하셨다지요 ?

 

o 첨부 사진 1. 법정스님이 이생에서 마지막 보낸 행자실, 열반하신곳

o 사진 2  관세음보살상으로 성모마리아상 같음.(독실한 천주교신 서울대교수 최종래 작품)

 

 

 

참조: http://blog.daum.net/lovegeosong/4821656